
제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압구정로데오는 그냥 '잘 사는 동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야타족, 오렌지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곳이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곳이었죠. 그 후로 꽤 오랜 암흑기를 겪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서울 최고의 상권으로 완전히 부활했습니다. 직접 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느낀 건, 이곳은 단순히 '비싼 물건이 많은 곳'이 아니라 '돈을 쓰게 만드는 능력'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이엔드 소비가 집결한 이유
압구정로데오 상권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하이엔드 집중'입니다. 여기서 하이엔드(High-end)란 최고급 제품과 서비스를 지칭하는 용어로, 단순히 가격이 비싼 것을 넘어 품질과 브랜드 가치가 최상위권에 속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이곳에 모여 있는 업종을 보면 독특한 패턴이 보입니다. 명품 매장, 수입차 전시장은 기본이고요. 결혼 준비를 위한 스튜디오, 드레스샵, 메이크업 숍이 밀집해 있습니다. 고급 유모차 브랜드, 프리미엄 유아용품점도 눈에 띕니다. 성형외과, 피부과 같은 비급여 의료시설, 골프용품점, 고가의 운동복 매장까지.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업종들인데,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인생에서 큰돈 쓰는 순간'과 연결된 소비 아이템들이라는 점이죠.
국내 유통업계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일상적인 소비에서는 천 원도 아끼려 하지만 결혼, 출산, 성형, 교육 같은 '인생 이벤트'에서는 오히려 지갑을 쉽게 연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압구정로데오는 바로 이 심리를 정확히 파고든 상권입니다. "이왕 하는 김에", "인생에 몇 번 없는 일인데" 같은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죠.
제가 직접 이 동네를 걸어보니 스타벅스조차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청담 압구정점은 주차시설을 대폭 개선하고 미술관처럼 꾸며놨더군요. 편의점 이마트 24에는 바리스타가 상주합니다. 같은 브랜드인데도 이 동네에서는 '프리미엄 버전'으로 운영되는 겁니다. 심지어 떡볶이, 커피, 갈비 같은 평범한 메뉴도 여기서는 '초고급'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옵니다.
코로나19 당시 자료를 보면 더 흥미롭습니다. 대부분의 상권이 2020~2021년 매출 급락을 겪었는데, 압구정로데오는 2021년에 이미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결혼 관련 업종(미용실, 메이크업 스튜디오)은 2020년 잠깐 주춤했다가 2021년 바로 회복됐고, 스포츠센터, 헬스클럽, 요가·필라테스는 아예 우상향 곡선을 그렸습니다. 성형외과, 치과, 산후조리원, 영어학원도 마찬가지였죠. 이건 단순한 상권 회복이 아니라 '부의 집중'이 가속화됐다는 증거입니다.
재건축이 만들 미래 가치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진짜 잠재력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재건축입니다. 여기서 재건축이란 노후 아파트를 철거하고 새로운 주거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을 말하는데, 단순히 건물만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상권 전체의 이미지와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제가 알기로 압구정 신사동 지역 건물 상당수는 압구정현대, 한양아파트 소유주들이 갖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암흑기에도 건물을 버티고 있었죠. 그 덕에 상권이 흔들려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겁니다. 앞으로 이 지역 아파트들이 재건축되면 지금의 노후한 모습은 완전히 탈바꿈할 겁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부유층이 늘어나고, 그들을 겨냥한 고급 상업시설이 더 들어서겠죠.
실제로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평균 분양가가 평당 5,000만 원을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압구정 재건축이 완료되면 이 지역은 말 그대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동네'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삼성역 주변 개발까지 겹치면 강남 핵심 코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지역 상권을 보면서 느낀 건, 부의 양극화가 상권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입니다. 공급자도 양극화되고, 가격도 양극화되고, 소비자의 소비 패턴도 양극화됩니다. 그중에서 '비싼 가격을 가진 비싼 공급자'와 '비싼 수요자'가 만나는 곳이 바로 압구정로데오입니다. 이태원 상권이 어려워지면서 젊은 층이 압구정과 홍대로 양분됐다는 분석도 있지만, 저는 근본 원인이 양극화에 있다고 봅니다.
압구정로데오 상권의 강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명품, 수입차, 고급 의료, 프리미엄 교육 등 하이엔드 업종 집중
- 결혼, 출산, 성형 등 '큰돈 쓰는 순간'을 겨냥한 업종 밀집
- 재건축 호재로 인한 중장기 성장 가능성
- 청담동 명품거리, 갤러리아 등 인접 상권과의 시너지
이 상권은 강남역이나 홍대처럼 유동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도 아니고, 성수나 연남동처럼 최근에 뜬 곳도 아닙니다. 하지만 '돈을 쓰게 만드는 능력'만큼은 국내 최고입니다. 저도 처음엔 "비싼 것만 모여 있으면 뭐 하나, 사람이 없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가보니 사람도 넘쳤고 소비도 활발했습니다.
솔직히 이 지역에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해야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바라보고 움직이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1~2년 후 이 상권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재건축이 본격화되면 어떤 모습일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암흑기가 시작된 게 혹시 압구정로데오의 부활 여파는 아닐지, 그런 생각도 듭니다.